나여! 백 고무신

칠곡 왜관 향사아트센트, 호국평화기념관, 2020.12.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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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왜관 향사아트센트, 호국평화기념관, 2020.12.19

나여! 백고무신 2020. 12. 19. 17:56

.박귀희 명창은 1921년 칠곡군 가산면 하판리(지금의 송학리)에서 태어나 민족음악가이자 음악교육사업가의 길을 걸으며, 국악대중화에 앞장서 온 가야금병창의 명인이다. 1968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으며, 문하생으로는 김덕수, 안숙선, 강정숙, 정예진, 박범훈 등이 있다.

1921년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하판동(오늘날 송학리)에서 태어난 박귀희 명창은 8세 때 대구에 있는 외가에서 보통학교를 다녔다. 선생은 매일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국악전수소에서 귀동냥으로 판소리 단가(短歌)를 배웠는데 이것이 소리의 길로 접어든 계기가 되었다. 이후 명창 이화중선의 눈에 들어 대동가극단에 입단하였고 대구극장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뒤 전국을 누비며 ‘소녀명창’으로서 공연활동을 펼쳤다.  
가야금 병창(竝唱)이란 단가나 판소리 중 일부 대목을 가야금으로 반주하며 부르는 것이다. 조선 말기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순조 때의 명창 김제철과 신만엽이 처음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명인으로는 심상건, 강태홍, 오태석 등이 널리 알려졌다. 가야금 병창은 고도의 능력과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로서 아무리 소리를 잘 한다고 해도 가야금 연주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안정감이 떨어지고, 반대로 연주 실력이 현란하더라도 소리가 따라주지 못하면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소리와 가야금 연주 어느 한쪽도 소홀할 수 없는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장구 반주가 곁들여지며 대표적인 곡으로는 「녹음방초」, 「호남가」, 「청석령 지나갈제」, 「죽장망혜」, 「춘향가」 중 ‘사랑가’,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수궁가」 중 ‘고고천변’ 등이 있다. 1968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이 지정되었고, 병창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유자로 지정된 사람이 바로 향사 박귀희 선생이다.
가야금 병창(竝唱)이란 단가나 판소리 중 일부 대목을 가야금으로 반주하며 부르는 것이다. 조선 말기부터 불리어지기 시작하였으며, 순조 때의 명창 김제철과 신만엽이 처음 도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적인 명인으로는 심상건, 강태홍, 오태석 등이 널리 알려졌다. 가야금 병창은 고도의 능력과 기술이 요구되는 분야로서 아무리 소리를 잘 한다고 해도 가야금 연주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안정감이 떨어지고, 반대로 연주 실력이 현란하더라도 소리가 따라주지 못하면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소리와 가야금 연주 어느 한쪽도 소홀할 수 없는 분야이다. 일반적으로 장구 반주가 곁들여지며 대표적인 곡으로는 「녹음방초」, 「호남가」, 「청석령 지나갈제」, 「죽장망혜」, 「춘향가」 중 ‘사랑가’,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 「수궁가」 중 ‘고고천변’ 등이 있다. 1968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로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이 지정되었고, 병창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유자로 지정된 사람이 바로 향사 박귀희 선생이다.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국악교육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하여 뜻 있는 국악인들과 함께 ‘국악예술학교(오늘날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후학 양성과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한 선생은 생애 마지막 순간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조건 없이 학교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향사 박귀희 명창은 우리나라 국악교육의 선구자이자 국악의 어머니로서 시대를 앞서 나간 최고의 명창이었다.

 

 

6.25전쟁 칠곡 55일 전쟁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