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_고창읍성 & 충남 공주_공산성__2016.08.05
◆.하계휴가 여행지 세번째_낙안읍성
폭염과 함께 독일마을에 들렀지만 별 특별한게 없어서 순천으로 향합니다.
순천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방계획도시로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간 12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로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선정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다.

낙안읍성 소개
1. 위치 : 전남 순천시 낙안면 충민길, 읍성안길, 쌍청루길
2. 면적 : 223,108㎡(성내 135,597 성외 87,511)
3. 인구 : 98세대 228명
4. 건물현황 : 308동(본채 147 부속채 161)
5. 문화재 보유 현황(13종) : 성곽 1,410m, 중요민속자료 가옥 9동, 노거수, 객사, 임겸업 장군비 등

연혁
고려 태조 23년(940년) 낙안국(양악)으로 개칭
조선 태조 6년(1397년) 낙안태생 김빈길 장군이 토성 축조
조선 세종 6년(1424년)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
조선 인조 4~6년(1626~1628년) 임경업장군이 석성 중수
1983년 6월 14일 사적 제 302호로 지정
2011년 3월29일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포졸 아저씨 포스가 있네.ㅎ
조선시대 형벌이 많네.
깔따구 같은 걸로 한대 맞으면 어~휴
나는 어디에~~~
□.하계휴가여행지 열두번째_고창읍성
일명 모양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 왜침을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식 성곽으로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해주었다.
고창군민의 날 행사를 모양성제라 하며, 이날을 맞이하여 유비무환 정신으로 성을 축성한 조상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향토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긍지와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973년부터 열리고 있다.
주요 행사로 축제행사와 기념식이 열리고, 문예 행사로는 판소리 공연, 농악 놀이, 백일장 등이 민속놀이로는 답성놀이, 널뛰기, 줄다리기, 씨름 등이 열리며 다채로운 체육대회도 열리고 있다.
모양성제는 매년 음력 9월9일(중양절)을 전후로 열리는 행사로, 민간단체인 사단법인 모양성제전회 주최, 각 사회단체 주관으로 전국 유일의 답성 놀이, 전통혼례식, 수령부임행차재현, 성 쌓기 재현, 동리대상 시상식 및 전국 어린이 판소리대회, 각종 전시회 및 축하공연, 보릿골 난장 등 화합의 한마당 잔치로 축제 분위기를 돋우며 꾸준히 발전되어 오고 있다.
✠.답성놀이- 고창읍성에는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무병장수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는 전설로 인해 독특한 성 밟기 풍속이 전해온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저승길이 환히 트여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 밟기는 윤달, 그 중에서도 윤삼월에 해야 효험이 많다고 한다. 초엿새, 열엿새, 스무 엿새 등 여섯 수가 든 날은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 하여 더욱 많은 여자들이 다른 먼 지방에서까지 모여 들었다.
성을 다 밟은 후에는 머리에 이었던 돌을 성 입구에 쌓아두도록 되어 있다. 이 성을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재현하기라도 하는 듯 이 성 밟기는 겨울내 얼어붙은 성을 다지고 유사시에 대비하려는 슬기가 담긴 풍습이다. 요즘에는 주로 음력9월9일에 열리는 모양성제 때에 한다.
✣ 유래 : 고창읍성(모양성)은 아낙네들의 힘만으로 축조 되었다는 전설적인 사연이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답성놀이(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놀이)는 여인네들의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모양성제의 가장 깊은 뜻은 이 성곽의 축성배경이 왜침(倭侵)을 막기 위한 것이므로 유사시의 석전(石戰)에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예지로서 머리에 인돌을 성안에 쌓아 두고 갔다는 전설도 모두가 호국(護國)의 의지를 빛내주는 이야기들이다.
■.하계휴가여행지열네번째_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_ (高敞 茂長縣 官衙와 邑城)
위치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읍성길 45 (무장면)
문화재 지정 ; 사적 제346호(1991년 2월 26일 지정)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이 성은 1991년 2월 21일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데 성의 둘레는 약 1,400m, 넓이는 144,949.4m²(43,847평)이다.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동안 흙으로만 축조된 토성으로 알려져 왔던 이 성이 공사때에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드러났었는데 성곽일부가 흙과 돌을 섞어서 축조된 것임이 밝혀졌다. 1915년에 발견된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0,000여명을 동원하여 그해 2월부터 5월까지 만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한편 1894년 일어났던 동학 농민혁명은 이곳 무장읍성에서 맨 처음 봉기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하계휴가여행지 열여섯번째 충남 공주_공산성 금서루(公山城 錦西樓)
공산성 4개의 성문 가운데 서쪽에 위치한 문루이다.
성안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가, 1895년에 편찬된 공산지(公山誌)등의 문헌 기록과 동문 조사 자료 및 지형적 여건 등을 고려하여 1993년에 복원하였다.
현재 문루는 본래 서문이 있던 위치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지어졌다.
금서루는 비록 새롭게 복원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공주 금서루를 끝으로 머나먼 하계휴가 장정을 마치고 무사히 귀가합니다.
폭염 더위에 어려움도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