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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여사.정지용 시인 생가 탐방

백고무신 부부 2016. 9. 26. 08:43

육영수여사 생가를 찾아서~~

 

생가터 입구에는 아름드리 고목이 자리하고 있다.

 

소개 ; [시도기념물 123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1925년 11월 29일에 태어난 장소이다. 현재 건물은 없지만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송정승 및 민정승이 거주하여 삼정승의 집이라 불리던 가옥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가 민정승의 자손 민대감에게서 1920년 매입하였다고 한다. 6,047㎡의 대지 위에 1970년 초에 개축된 관리사·사당 등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울창한 산림이 형성되어 있고 본채·사랑채·별당 등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터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연못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전터가 어리어리하네요.

 

 

 

육여사님 생전에는 무지 잘 살았나 보네요..연자방아(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말이나 소 따위로 하여금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다.)까지 있었네요.

 

뒤주(통나무로 만들거나 널빤지를 짜서 만든다. 통나무로 만드는 것은 밑둥과 머리에 따로 널빤지를 대어 막고, 머리 부분의 한쪽을 열도록 문짝을 달아 낟알을 넣거나 퍼낸다.)가 이리 큰게 두채나 있었고

 

 

 

 

헐~ 그 시기에 석빙고(겨울에 얼음을 채취, 저장하였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는 것)까지 있었다니..

 

 

오 마이갓, 차고도 있었네..

 

 

☞.시인 정지용 생가 탐방 :

지용과 함께 1930년대 우리 문단을 풍미한 김기림은 지용이 “조선 신시사상(新詩史上)에 새로운 시기를 그으려한 선구자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소월과 지용은 동갑이지만, 그들의 시를 보면 100년의 차이가 난다”고 유종호는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소월이 한국적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정통적이고 잠재적인 모국어를 구사했다면, 지용은 시적 대상의 적확한 묘사력과 언어조탁, 시적 기법의 혁신으로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 시의 성좌(星座) 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밀랍인형이 정말 정교하군요.

 

옆에 앉아 계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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