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고무신 부부

북구_동화천 역사 탐방길_2024.12.29 본문

체력은국력/둘레길, 관광(여행)

북구_동화천 역사 탐방길_2024.12.29

백고무신 부부 2024. 12. 29. 19:33

☞. 언제? : 2024/12/29
☞. 어디를?(주봉/높이/행선지) : 북구_동화천 역사 탐방길_
☞. 들머리는? : 대구 북구 동변동 699 (뷰인마인드)
☞. 특징,볼거리는? : “세심정(터)와 나루터, 송계당, 서계서원, 선사유적전시관, 광해군태실, 경모재, 천년느티나무”
☞. 누구하고? : 와이퍼하고 둘이 서~
☞. 난이도는 ? : 북구 유니버시아드 아파트 108동 금호강변을 시작으로 도로를 따라 가는 탐방길 안내도가 전혀 없어 주소를 찍어 찾아가야하는 길이다.
☞. 이동코스/거리는? :  세심정(터)와 나루터 → 송계당 → 서계서원 → 선사유적전시관 → 광해군태실 → 경모재  →  연경동 천년느티나무 → 연경서원 터 (북구 문화체육관광과에 안내도에 주소는 서계서원과 같아서 맞지 않아 세심함 부족) → 원점회귀 (이동거리 km=차량)
☞. 오늘의 자체평점은? : ●●○○○

(화담을 지나친 금호강 물길은 이내 옛 세심정(洗心亭) 자리와 나루터. 지금의 동변동 유니버시아드선수촌 아파트 108동 부근 가람봉 입구 금호강변이다.
(세심정은 대구 최초의 서원인 연경서원 건립을 주도한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의 형 전응창(全應昌)이 세운 정자다. 세심(洗心)은 그의 호(號)이기도 하다. ‘마음을 씻는 정자’라는 뜻이다.) - 흔적은 전혀 없고 안내도 역시 없다.
송계당(고려말 충신 두문동(杜門洞) 72현(賢)중의 한분인 송은(松隱)구홍(具鴻)과 임진왜란때 대구에서 의병을 일으킨 구홍(具鴻)의 8대 손계암(溪岩) 구회신(具懷愼)의 절개와 위업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건물인데 두 분의 호를 따서 송계당이라 하였다.) 문이 잠겨 있어 볼 수 없다.
송계당을 나와 좌틀, 옹기집 좌틀, 대건유리 좌틀,
정관정 인천 이씨 재실을 나와
일레븐 좌틀, 효열각을 시작으로
창렬각 정려각
서계서원(인천이씨 재실로 1781년(정조5년) 조선 태종조 문예관 대제학등을 역임한 오천(烏川)이문화(李文和)공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학들이 창건하였다. 화수정으로 명명되어오다 1871년(고종8년) 국령에 의하여 서원이 철폐되었고, 1987년 서원복원을 위한 서계서원 사적비를 건립하였고, 1992년 4월 보관중인 "서계서원" 현판을 부착하였다.) 을 나와
북야성, 이안컴 우틀, 골목을 빠져 나오면
선사유적전시관, 역시 문이 닫혀 있다.
다시 연경동 방향으로 주~욱 나와서 세븐 일레븐 좌틀,
막다른 길에서 좌틀, =경모재(인천이씨 문중의 24세손 휘 훈 호 경모공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재실로, 장대석 기단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사각 기둥을 세운 민도리식의 3량가로 정면 4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은 건물입니다. 다만 건립년대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 흠이라고 합니다. =광해군태실(광해군은 1575년 4월 26일 출생하였으며 1581년 이곳에 장태하여 임금으로 즉위한 이후 1609년 11월 태실의 가봉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태실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태실마을로 불려지며, 북서쪽의 주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맥의 끝자락에 돌출되어 솟아오른 삿갓모양의 봉우리인 태봉산(일명 태등산)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광해군(조선왕조의 15대 임금) 태실은 아기태비와 가봉태비가 모두 존재하고 장태한 후 장소를 옮기지 않고 같은 곳에 가봉한 특징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가봉의 과정이 상세히 남아있다.)
천년느티나무(느티나무가 새천년 상징나무로 선정된 이유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을 마을의 안녕과 화합 그리고 태평성대를 누리고자 마을어귀나 성황당등에 느티나무를 심어 왔으며, 이를 통하여 지역간의 화합, 우리의 소원인 통일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발전을 그리고 선진국으로 비상을 추구하는 역사성과 문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북구청 안내(주소)에 따라 왔더니 다시 서계서원, 이게 뭐여! 같은 곳이 잖아. 북구는 테마길도 그렇고 내세우기는 하는데 제대로 된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