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여! 백 고무신
♠.✍.부여의 후예ㅡ고구려 고씨, 백제 사마씨 본문
✍.부여의 후예ㅡ고구려 고씨, 백제 사마씨
부여의 후예 고구려 백제(남부여) 한 (한서(漢書)- 한 나라 유방은 위씨(爲) 성을 폐하고 유씨 성으로 바꾸어서 한서(漢書)-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준(準) 위지(魏志)- 조선왕(朝鮮王) 준(準)은 한(漢)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고구려 고씨, 사마(부여)씨, 한나라 유씨 성씨 고찰 (전에 성씨고찰에서 고구려계와 대륙(흉노)성씨관련은 썼으니 사마 씨와 백제 성씨 위주로~~~전에 쓴 글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일단, 사마씨(부여 씨)를 알려면 부여사를 알아야한다~~
대륙의 천제국이었던 부여 (진나라 옥리였던 정막이 부여인 왕문의 글(한문)을 배워가 실무에 편리한 예서를 만들었고 이것이 한나라의 한예가 되었으며 후한(後漢)에 이르러 왕차중(王次仲) (부여인 왕문의 후예)은 한예를 간략화하여 해서(楷書)를 만들었으며 이 후 이것을 정서(正書)라 하여 표준 자체로 삼았다.
한(漢)나라 중기에 채옹(蔡邕)이라는 인물이 만들었다는 팔분체는 전서(篆書)의 요소를 완전히 탈피한 예서의 틀을 완성시킨 서체이다.
부여왕의 상징 청동거울(동경(銅鏡))
이 당시 천제국은 진이 아니라 부여였다.
자신들이 청나라의 정통성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고의로 위만주국이라며 만주국을 고의로 역사에서 제거하고~
마치 청나라 황제인 부의가 청나라 멸망 후 반청을 외치던 한족들에게 반대하며 만주국을 세운 것을 부정하면서 (일제의 이용 당 했지만~)
청나라에서 중화민국으로 다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정통성이 넘겨간 듯 세상을 속이듯이~~~
한나라도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나온 것을 숨기기 위해 부여역사를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다.~
부여의 1대 단군은 해모수(고리국 사람)이며 2대는 모수리 단군으로 이때 모수는 묵돈, 모돈. 묵특(선우)이라고도 한다, 묵특 선우의 후예에 한나라 유방의 후손인 흉노 유연 (유연의 한을 역사상 전조라 한다,) 흉노의 왕이 유씨 성을 가지고 있었고, 남흉노의 왕족들이 흉노어로는 연제씨이다, 즉 복성 연제씨의 단성씨로의 교체가 유씨다. 유연은 남흉노 갈족 출신으로 묵특 선우의 후예로서 어부라 선우의 후예이다. 종조부인 유선의 추대를 받아 대선우 한왕의 자리에 올라 흉노부흥의 대업을 시작했다, 고로 유연은 유방의 후손이고 한왕은 대선우입니다, 당나라 이세민이 흉노들의 선우 천왕자리에 추대 받았 듯이~~~)이 있다.
4대까지를 북 부여라하고 5대 동명 고두막부터 졸본 부여라고 한다.
(몽골은 한무제를 격퇴시킨 북부여 5세 단군 고두막한(칸=선우)을 따로 숭배한다. 고구려나 백제는 자신들의 시조를 동명왕으로 여기고, 숭상하였다. 몽골이 고구려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고두막은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인 47세 단군 고열가의 후손이다)~~~
고주몽은 북부여 7대 단군이며 고구려 1대왕이다. (고구려 후 고진의 3세손으로 부여 6세 단군 고무서의 사위로 서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이다. 역사가 없어져서 고주몽의 아버지가 해모수로 돼 있다. 고주몽의 아버지는 불리지고로 고주몽의 아버지는 해모수가 아니며, 역사의 단절. 해모수의 둘째 아들이 고진.))
(중국사서는 고구려가 원래 백이숙제의 그 고죽국이라고 한다.- ‘수서(隋書)’ 배구전(裵矩傳) “고려(고구려)의 땅은 본래 고죽국이었다.,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 말기 고죽국왕의 아들이다.~
백이숙제는 근세조선의 수양대군(세조)이 봉지로 받았다는 바로 그 수양산에서 굶어죽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의 수양산이 대륙의 수양산을 닮아 그리 지었다한다, 말도 안 돼는 소리)
동부여(가섭원 부여)는 해부루(북부여 4세 단군 고우루의 동생으로 북부여 5세 단군 고두막에게 쫓기어 가섭원에 나라를 세웠다)-금와-대소의 3대 108년간~~~
斯麻는 司馬이다.
고구려와 한은 위씨(爲氏)에서 연유 한 서와 위서에 의하면 위씨에서 고구려 고씨와 사마씨(이들은 부여씨) 유씨가 갈라졌다(혈족이란 소리다, 한족이 아니란 소리다.)
(진서(晉書) 재기(載記)-고구려 고주몽은 위씨에서 고씨로 바꿨다, 고구려 역시 고신씨(高辛氏)의 후예이므로 성을 고씨(高氏)라 했다.
(한서 왕망전) -한나라 유방은 위씨(爲)성을 폐하고 유씨성으로 바꾸어서 나라를 흥하게 하려고 했다, 유씨(劉氏)의 시조는 요임금의 아버지 제곡 고신씨로 부터 비롯 되었다.
(동국사략)- 남평양성은 한경으로서 부여의 위씨(爲氏)들이 산다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세기9권 백제편)- 백제의 처음 건국자가 구태(九台)라고 하고 백제는 마한에서 나왔다고 하였는데 일설에는 구태가 위씨라 한다.
(진서 권1본문 5쪽)-위씨는 요임금의 외가 쪽 성이며 사마씨(司馬氏)와 같고 본시 조상은 고양씨 라하고 모두가 황제(黃帝)로 부터 비롯되었다.
또 진나라를 무너뜨린 대부분의 장수가 사마씨(司馬氏)인데 사마씨는 위씨(爲氏)와 같다.
그러면 漢나라와 고구려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한서(漢書) 주석-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준(準)
기자준왕(基子準王)은 조선왕 준(朝鮮王 準)으로 秦나라 시황 27년 신사(始皇二十七年申巳)에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이 되면서 국력이 기울어져 26년 후(194.BC)에 마한을 건국한 것으로 되어있다.
삼국유사에는 위지(魏志)를 인용하여 "위만(魏滿)이 조선(朝鮮)을 공격하자 조선왕(朝鮮王) 준(準)은 궁인(宮人)과 좌우 사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서쪽 한(漢)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고 했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한(馬韓)은 무릇 세 가지가 있는데 기자준왕이 취할 당시의 마한, 기자 이후의 마한, 그리고 기자 준왕이 다스리던 마한 즉, 삼 마한(三馬韓)이 있었다고 해동역사(海東繹史) 世紀四, 三韓편에 기록하고 있다.
고 구려와 백제는 고주몽의 아들이 대를 잇고 신라 박혁거세는 동방 선도성모라는 동신성모=서천성모(중국인이 숭배하는 신)의 아들이다, 물론 고주몽도~~~
성씨 연구에 의하면 박,석,김은 원래 같은 김씨(흉노==>오환==>금오족==>김씨족==모용선비족)다.
이들은 제곡고신의 후예로서 고구려는 해마다 제곡고신에게 제를 지냈다.
위씨는 원래 흉노족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계보는 발해 고씨, 신안 주씨,대씨(고구려 왕족 대조영=걸 걸씨==>흉노 혁련씨==>
1,흉노 항씨==>남송(유송)황족 유씨로 바꿈(역시 유비의 후예라 한다, 유비의 후예는 일족으로 치지 않는다, 항씨 족보를 보면 유유의 조상은 초한지에 나오는 초패왕 항우의 셋째 숙부 항량의 동생 항양(초한지에 항우의 아버지와 항양은 나오지 않는다, 항씨 족보에는 항우의 아버지는 항초이고 항량은 둘째 항양은 세째~이 들의 1대 조상은 주무왕의 아들인 백금의 손자 숙도==>실제는 주무왕의 첫째 아우인 주공단(노나라)의 아들이 백금=이들이 흉노라는 얘기다, 또한 주무왕의 아우이자 주공단의 아우가 연왕 소공석(모용씨=흉노족 모용선비족)
대륙사에서 흉노, 선비, 저, 갈, 강을 5호라고 하는데~
강족은 고대 티베트족이고, 강족의 대표적인 게 안록산이다(현 우즈벡인 강족의 강국출신 강씨)
제갈공명은 전조를 세운 유연처럼 갈족이다.
제갈공명은 원래 성이 제갈이 아니었다,(오서)에 의하면 갈이었다 한다, 제나라에 갈족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제에서 온 갈이라 하여 제갈로 성을 삼았다
강족은 고대티벳민족으로서 주나라도 강족(남만계)으로 사료된다.(한국사도 같은 민족끼리 땅싸움하는걸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중국신화에 의하면 고구려 고주몽의 조상인 제곡고신의 아내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낳은 아이가 주나라 조상인 후직이다, 농경의 신으로 오곡의 신이다. 산해경에 의하면 동방천제(조선) 제준의 아들이다(동이족) 주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한 여상 강태공(여나라에 봉해졌고, 제나라의 시조)도 강족이다, 주의 시조인 후직의 어머니도, 무왕의 비도 강족이다, 은나라가 강족을 대단히 잔혹하게 다뤘다한다.(은나라는 제사 지낼 때 사람 300명씩 죽여 제물로 바쳤는데, 대부분 강족 노예였다고 한다, 강태공이 주나라를 도와 은을 멸할 때 주나라와 협력해 은을 멸한 게 강족이다.
시황제도 강족이라고 한다~서융이 강족의 일파이다~~~주나라도 서융의 일파로 보기도 한다.
또한 탁발선비 (당, 고대 티벳족 탕구트(당항)-당과 탕구트는 같은 탁발씨인데 탕구트는 강족이다.)등 선비족도 강족으로 사료된다.
저족은 강족과 뿌리가 같다~
저 족은 강족과 한족에 흡수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저족은 전진을 세운 부견이 있다(죄다 한족사로 우기는 판이니~~~)
강족과 저족은 남만계의 민에 속하는 종족으로 월남, 대만, 일본등이 남만 민계열이고 백제계에 속하며~도연명이 이들 민계열이다. 월왕 구천은 이들 중 산융, 산월계이며 월남은 월나라의 후예이다.
주를 무너뜨린 주무왕은 주문왕의 차남이다, 주무왕이 은나라 폭군 걸주에게 갖혔을 때 장남 백읍고는 유리에 안치된 아버지를 구하려다 은나라 주왕과 달기에게 죽임을 당해 그의 살은 다저져서 전병(만두)이 되고 환으로 되어 아버지 문왕이 먹어야했다.)로 분파했다
2, 흉노 유연(위,촉,오 삼국을 통일한 사마씨의 진(후위)를 무너뜨린 한 (유비의 후예인 흉노 유연이 세운 한나라를 역사상 전조라고 한다.)==>여기서도 유비의 유씨는 흉노족임을 나타내고 있고, 고구려의 방계임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척발 선비족이 북위때 원씨로 바꾸고 북위의 일파이던 몽골족이 따라서 원이라고 나라이름을 짓는다.
북위의 왕족이던 척발씨의 일족 독발씨가 源씨가 되는데, 그들의 후예임을 일본 천황계에서 표명하고 있다.
(일본의 성씨. 미나모토[源]라는 성을 가진 씨족을 통틀어 일컬을 때 겐지라고 한다. 이들은 독발씨의 원씨 후손이라고 한다.~
중국도 일본의 조상으로 여진-몽골계(선비족)를 치기도 하므로 은근히 혈통계보가 맞아 떨어지고 있다
또한 중국사의 근원인 동이남만(동이족)중에 남만 민계(산월 산융)에 속하는 게 일본, 대만 (백제계 도이족)이므로 (남만의 대표 월왕 구천, 삼국지의 오나라 손권==>백제계이다~오월의 통합이 백제라고 한다)
즉, 고구려 고씨와 백제 사마씨, 한나라 유방(흉노)은 부여씨에서 갈라졌으므로~
당연히 대륙의 흉노성씨가 일본의 황족, 왕족 성씨와 연결되게 된다.(만년 노예 잡족 한족은 없다.~~~)
위진남북조시 대=위,진,5호16국,남북조까지~~~수-당을 거쳐 백제가 망한 뒤 그 일파들은 야마토조정 (현 일본)을 세웠다,
반도부여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여가 무너진 뒤에도 그들의 후예인 고구려와 한나라는 대륙에 있었고~
고구려의 일족인 백제도 대륙에서 해외 22담로를 운영하며 다스리고 있었으며,
열도부여로 일컬어지는 왜도 당연히 대륙에 있었으며 현 열도는 그 왜의 변방에 속한 곳이었다~~~
일본의 대륙성씨~~~
일본인 성씨의 30%이상이 도래인이고, 그들은 전부 왜의 지배계층이다
(현 일본의 평민들이 성을 갖게 된건 명치유신이후이니 성씨가 많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정한 혈족을 거느린 지배집단의 성씨분포가 중요하다)
일본 고사기, 일본서기에 의하면 한국을 거쳐 일본에 도래한 사람을 가리켜 한인, 당인, 귀래인, 도래인이라고 한다~
과연 이들은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이주한 사람들인가?
아니면 대륙에서 직접 일본에 건너간 한국인인가?
아니면 이차대전후 열도로 건너간 자들이 역사날조를 통해 자신들의 조상을 대륙에서 찾고 있는가?
고사기 일본서기 기록에 의한 대륙 성씨계 일본성씨~~~
궁월군 (진씨, 고대 왜왕의 고위 통치집단, 대륙의 거족출신,(신찬 성씨록은 진나라 출신이라고 하는데, [일본서기] 응신기 14년 시세조에 『궁월군이 백제로부터 내귀하였다. 고 기술되어있다 )==> 서융의 일파인 진시황이 한인성립의 시초이므로, 한인과 관련==>한족이 아님)
동한직(유씨, 일본에 귀화한 성씨의 주력, 일본 성씨 원전, 고교, 대장등 공통선조인 아지왕. 아지왕은 동한최후황제 한 헌제의 현손, 탁록) 서문수 (왕씨, 귀화한 한족집단이라고 하는데, 백제왕이 아지길사(아직기)에게 명하여 화마, 암말, 칼, 거울등 예물을 보냈는데, 왜왕이 그에게 태자의 교육을 맡겼다. 왜왕이 더 나은 자가 있는가라고 묻자 왕인이라고 답하여~왜왕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왕인을 모셔온다, 따라서 왕인은 서문수의 우두머리가 된다, 이들이 산동반도의 거족이며, 낙랑군의 왕씨일족이다==>백제인인데 한족의 우두머리가 된다고 한다, 고로 백제는 대륙에 있었다는 얘기이고, 백제인이 한인이란 소리다. 전에 다른 곳에서 백제 한성인을 한인이라고 했다고 글을 쓴적이 있다, 이들이 한성인=한나라 인=한수유역인=한인이다 )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인이라고 함, 진시황 또는 한무제의 후예라고 함
아지사주 (아들 도가사주)-한영제의 후손, 아지사주의 아들 유도하의 세 아들은 산목직, 지노직(성노직) 이파기직이다, 산목직은 25개 일본성씨의 조상이고, 지노직은 8개 성씨의 공동조상, 이파기직은 10개 성씨의 공동조상이다, 이들은 왜왕의 중하급관리를 지내고 관료호족집단으로 성장, 고대일본에서 무시 할 수 없는 가문으로 성장한다.
신협촌주청-오나라 손권의 후예
사마달지=사마씨의 후예
채씨=채양의 후예
임씨-임화정의 후예
그밖에 당나라 때는 국제결혼도 하고, 양국간에 서로 귀화하던 무리도 생겨났다.(왜가 원래 대륙에 있었다는 얘기가 오히려 맞겠다.)
사마씨혈통 일본천황
현 천황가(天皇家)의 개조(開祖)야마토 왕조의 중시조,
게이타이천황은 무령왕의 아우
게이타이 천황 = 무령왕의 동생 =곤지왕의 아들
증명하는 유물
부 여왕의 상징 청동거울(동경(銅鏡))
게이타이 천황과 무령왕이 친형제임을 증명하는 유물 일본의 국보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 : 청동제)
503년 무령왕이 아우인 게이타이 천황에게 보낸 것으로 고증 화 상경 전문
"계미년(503년) 8월 10일 대왕의 연간에 남동생인 왕을 위하여 오시사카궁(忍坂宮)에 있을 때 사마께서 아우님의 장수를 염원하여 보내주는 것이다. 개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었도다."
바로 여기서 이 화상경을 보낸 사람은 사마왕 즉 무령왕이고 503년경의 천황은 바로 게이타이 천황이기 때문입니다. 즉 무령왕과 게이타이 천황이 친형제라는 말입니다.
한반도의 기록으로 보면 개로왕(455~475) - 곤지 - 동성왕(479~501)·무령왕(501~523) 등의 관계가 부자의 관계이고 게이타이 천황과 무령왕이 친형제간입니다. 그러니까 개로왕 - 곤지왕(유라쿠 천황) - 동성왕·무령왕·게이타이천황 등의 가족관계가 성립이 됩니다.
개로왕(蓋鹵王 : 455~477)은 한성백제의 마지만 왕으로 장수왕의 침공으로 피살되고 그의 맏아들인 문주왕(文周王 : 475~477)은 피신하여 웅진에서 즉위합니다.
곤지왕은 개로왕의 차남인데 국난을 피해 아들인 모대(牟大) 왕자와 함께 일본에서 살고 있었고, 반도에서는 문주왕의 아들인 삼근왕(三斤王 : 477~479)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혼란 속에서 피살당하게 되자 곤지왕은 자신의 첫째 아들인 모대왕자를 백제로 보내 왕위를 잇게 하였으니 이 분이 바로 동성왕(東城王 : 479~501)입니다. 이후 곤지왕의 차남인 사마(斯麻)가 동성왕을 이어 무령왕(武寧王 : 501~523)으로 즉위했고 곤지왕의 삼남인 오오또(男大迹)가 일본에서 등극하는데 그가 바로 제 26대 게이타이(繼體) 천황(500?~531)입니다.
삼국사기』에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드님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즉 동성왕·무령왕·게이타이 천황은 모두 곤지왕의 아들로서 이들은 모두 형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출처] 부여의 후예ㅡ고구려 고씨, 백제 사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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