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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琵瑟山] 1,083m (달성 옥포,2013,01,13) 본문

체력은국력/300대 명산

■.비슬산[琵瑟山] 1,083m (달성 옥포,2013,01,13)

백고무신 부부 2013. 1. 14. 13:22

오늘은 비슬산 자락에 있는 와우산성을 찾아서 가기로 했는데. ㅎㅎ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

에라. 걍 비슬산으로..gogo.  유가사 입구 방향으로~

특징·볼거리

비슬산은 대구시, 달성군, 청도군에 걸친 산으로, 유가사 쪽에서 올려다 보면 거대한 수직 암릉이 정상을 받치고 있듯이 우뚝 솟아 있는 듯하다.

정상인 대견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가면 조화봉으로 이어진다.  조화봉 능선에서 서쪽으로 대견사 터로 이어지며 1034봉에 팔각정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앞산으로 가는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

정상에서 약 4km에 걸친 능선은 주변에 바위가 있을 뿐 육산(흑산)으로 큰 나무들이 없는 시야가 탁 트이는 초원 같은 이 능선에 가을에는 억새가, 봄에는 군락을 이룬 진달래가 붉게 물들인다. 진달래 군락사이에 싸리나무 등 잡목들이 섞여 있으나 진달래가 더 많다.

능선 사이에 있는 대견사 터는 대견사라는 사찰이 있던 곳으로 석탑과 미완성의 연화대석 큰 규모의 돌 축대들만이 옛 날 사찰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높은 벼랑 끝에 세워둔 대견사지 삼층석탑은 붕괴되어 있었던 것을 1986년 달성군에서 수습하여 재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琵瑟山."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있는 바위의 모습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비슬이란 말이 인도의 범어의 발음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하며, 비슬의 한자 뜻이 포라고 해서 일명 포산이라고 하였다 한다.

비슬산에는 절이 많다. 유가사는 조계종 팔공산 동화사의 말사로 신라 흥덕왕 2년에 도성국사가 창건했다고 하고. 도성암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도성암 바로 위에는 도통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신라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소재사가 있다.

 

 

 

 

 

 

 

 

 

 

 

 

 

 

 

 

비슬산 암괴류에 대한 상식

● 빙하기 기후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암괴류로  암괴류 큰 자갈 내지 바위 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바위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비탈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하는데 바위들이 마치 강물처럼 흐르는 모습을 띠고 있으므로 ‘돌강’ 또는 ‘바위강’으로 부른다.

비슬산 뿐만 아니라 경남 밀양 만어산, 부산 금정산도 우리나라에서 세계최대 규모의 암괴류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비슬산 입구에 있는 사찰인 소재사(消災寺)를 지나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이르면 등산로 오른쪽으로는 암괴류가, 왼쪽으로는 너덜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암괴류는 해발 약 1000m 부근에 위치하는 대견사지 부근부터 시작되는데 여러 개의 암괴류가 각각 다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해발 750m 지점에서 합류하여 450m 지점까지 이어지는데 길이는 약 2㎞, 최대 폭 80여m에 달한다.

비슬산은 중생대 말 백악기 때 깊은 땅속에 뚫고 나온 마그마가 굳은 화강암으로 되어있다.  화산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안산암을 뚫고 마그마가 침투한 뒤 굳은 것으로 수천만 년 동안 지표가 깎여나가자 땅 속의 화강암은 차츰 지표로 드러났다.

이 화강암이 암괴류를 만들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자연의 얼음공정이다.  8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의 마지막 빙하기가 지구를 덮쳤다.  학자들은 당시 한반도는 빙하에 뒤덮히지는 않았지만 얼음의 영향권에 속했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처럼 1년 중 9개월은 영하의 날씨가 계속됐다는 것이다.  나머지 석 달 동안 지표면이 녹았지만 지표 밑에 영구동토층이나 기반암층이 있어 물이 빠지지 않아 마치 진창처럼 흙과 바위 등이 뒤섞이는 상황을 만들곤 했다.

이처럼 동결되고 녹는 상황이 빈번하게 반복되면서 진흙이나 물과 뒤섞인 거대한 바위가 비슬산 계곡을 따라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 내렸다.  빙하기가 끝나고 빗물에 의해 흙이 모두 쓸려가고 거대한 바위만 남아 지금의 암괴류를 만들었다.  물론 현재의 비슬산 암괴류는 더 이상 발달하지도 않으며 큰 바위들이 움직이지도 않는 고정된 상태이므로 이런 단계를 ‘화석지형 단계’라 부른다.

암괴류와 너덜은 얼핏 보면 비슷한 돌 무더기가 쌓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너덜은 바위의 크기가 작고 각으로 된 반면 암괴류를 이루는 바위는 대체로 직경 1〜2m로 큰 편이다. 직경이 10m가 넘는 바위도 있다. 모서리가 풍화돼 둥글둥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15° 안팎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비해 너덜의 경사도는 30°로 높다.

● 풍화, 침식작용의 증거 ‘토르’

비슬산을 답사하다 보면 절터만 남아있는 대견사지는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寶幢庵)으로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각국사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4년(1227) 22세 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부분 침식 작용으로 특이한 모습으로 변한 바위인 ‘토르(tor)’가 있기도 하다.  토르는 커다란 암석이 심층풍화로 인해 자잘한 물질이 제거되고 남은 대형 화강암다.  대견사지에 있는 거북바위, 부처바위, 형제바위, 스님바위 등이 토르이다.  특히 톱(칼)바위는 토르이면서도 대견사지까지 오르는 길에 있는 너덜의 형성과정을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귀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