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고무신 부부

청도읍성__2023.06.14 본문

체력은국력/둘레길, 관광(여행)

청도읍성__2023.06.14

백고무신 부부 2023. 6. 14. 16:17

. 언제? : 2023/06/14

. 어디를?(주봉/높이/행선지) : 청도 읍성__

. 들머리는? : 경북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51-2 (주차장)

. 특징,볼거리는? : 청도읍성청도 제1경인 청도읍성은 지방관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된 성곽으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 누구하고? : 와이퍼하고 둘이서 ~

. 난이도 는? : 성곽 한바퀴라 무난합니다.

. 길잡이 :

. 이동코스/거리는? : 청도읍성-원점회귀 (총 이동거리 계 1.9km),

. 오늘의 자체평점은? : ●●○○○

청도를 여러번 지나면서도 가 볼 생각을 못했던 청도읍성으로 갑니다. 좁은 주차장에 주차합니다.

 

현재의 규모는 조선시대 선조 년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동래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에 성을 수축했는데 당시 청도군수 이은휘가 선조 23년(1590년) 시작하여 2년 후 완공했다.
각종 문헌기록과 고지도에 따르면 성의 둘레가 1570보(약 1.88km), 높이는 5자 5촌(약 1.65m)이며 읍성 내부에는 객사, 서쪽에 향청, 북쪽에 군기고, 동쪽에 사창, 객사 남쪽에 동헌과 각종 공공시설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객사인 주관과 동헌건물만 남아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면이 사각형 형태이다. 규모를 살피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있어 잘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성벽은 길이 1,570보(약 1.9㎞), 높이 5척 5촌(약 1.65m)이었다고 한다.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돌로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섞어 가면서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지금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성벽은 동문지(東門址) 부근으로 성벽의 기초부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데 높이는 대략 1m정도이고 길이는 10m정도이다.
성곽의 축조년대는 1590년(선조 2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완공되었으나 임진왜란을 맞으면서 동·서·북문이 소실(燒失)되는 등 크게 파손되었다고 한다. 그 뒤 소실된 문루(門樓)를 다시 새우고 성벽을 보수하여 조선조 말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어버려 지금과 같이 그 흔적마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 조선시대 문헌에 의하면, 이 성곽 안에는 동헌(東軒)·객사(客舍)·근민당(勤民堂)·군관청(軍官廳)·장관청(將官廳)·기고청(旗鼓廳)·군사(郡司)·인리청(人吏廳)·군기고(軍器庫)·대동고(大同庫)·고마청(雇馬廳)·사창(司倉)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청도읍성은 성의 기저부가 전역에 걸쳐 남아있고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자세한 기록이 있어 발굴조사와 고문헌 고증을 거쳐 북문(공북로)를 중심으로 성벽과 웅성 등 성곽 전체를 복원해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물로서는 객사로 사용되던 도주관(道州館)과 동헌이 있다. 동헌은 화양초등학교(華陽初等學校) 동쪽에 있는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