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여! 백 고무신

☞.주왕산(周王山) 7201.6m(청송2011/09/25) 본문

체력은국력/300대 명산

☞.주왕산(周王山) 7201.6m(청송2011/09/25)

나여! 백고무신 2011. 9. 25. 20:47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으로 손꼽히며, 특히 사람(주왕)의 이름에서 산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주왕산의 명칭은 예전부터 바위가 병풍을 친듯하다 하여 석병산, 골이 깊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지형 덕분에 큰 난리가 났을 때마다 사람들이 숨어 지낸 곳이라 하여 대둔산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에는 주왕산이라는 이름에 임금왕(王) 글자가 들어간다고 하여 주방산으로 고쳐 불렀으며 대한제국 이후 1900년대에 들어서야 주왕산이란 이름을 찾게 되었다고한다.

☞.산행길잡이 : 주왕산 산행은 폭포구간과 주왕산 주봉(720m), 왕거암(907m), 금은광이(812m) 등의 봉우리들과 연계되기도 한다. 어느 코스나 모두 5시간 내외다.

산행은 대전사에서 일반적으로 시작된다.  요즘은 입장료 달라고?  알면 왠지 썹썰하다.(4천원).  대전사를 지나 20분가량 걸으면 자하교.  이 다리를 건너 400m쯤 올라가면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주왕암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좁은 바위틈으로 들어가면 옛날 중국 진나라 주왕이 살았다는 전설의 주왕굴로 들어서게 된다.

자하교로 다시 나와 북동쪽 계곡길로 들어서면 망월대와 급수대가 금세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으로 압도해온다. 학소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협곡이 나타나고 곧이어 제1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로 반긴다.  제1폭포를 지나 선녀탕과 구룡소를 바라보며 계곡길을 오르면 휴게소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다리를 건너 10분 정도가면 우렁찬 모습의 제3폭포가 나타난다.

사창골을 따라 10분쯤 가면 제3폭포와는 달리 섬세한 모습을 한 제2폭포에 닿는다. 계곡을 따라 30분 가량 가면 합수지점인 후리매기, 후리매기에서 남쪽 계곡을 따라 20분쯤 가면 능선으로 오르게 된다. 가파른 능선길을 1시간쯤 오르면 칼등고개. 이 고개에서 서쪽으로 20분쯤 가면 사방이 탁 트인 주왕산 정상이다.

하산은 서북쪽 능선을 타고 가면 되는데 1시간 정도면 대전사까지 충분히 내려올 수 있다. 총 산행 5시간 소요. 한편 주왕산 진입 기점인 청송읍에서 동북쪽으로 3㎞ 떨어진 부곡동에는 빈혈증과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달기약수가 있어 함께 찾아가볼 만하다.

☞.산행코스(주봉 코스)대전사-주방천-자하교-무장굴-주왕암-주왕굴-학소대-출렁다리-1폭포-2폭포-제3폭포-후리매기3거리-능선- 칼등고개-정상- 서북능선-대전사 회귀

정상에 인증사진을 머리글에 먼저 올려 놓고

 

대전사 입구에서 바라본 주왕산 기암

주왕이 신라 마장군과 일전을 벌일때 이바위에 이엉을 두르고 쌀 뜨물을 흘러 보내 적을 현옥시켰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웅장한 자태는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대전사는 신라시대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 말 낭공 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창건 당시는 웅장한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소실되기 전에는 5방 3불전 3루각과 쌍탑이 있었다고 한다. 5방은 열선당, 탐진당, 관음전, 수월당, 한산전이고 3불전은 보광전, 극락, 명부전이고 3루각은 용화루, 범종각, 응향각이다. 이중 지금까지 남은 것은 보광전, 명부전뿐이다. 

 

대전사 (요즘은 어딜가나 공사중이다.)

 

대전사(약 1,300년전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창건)에서 바라본 주왕산 기암괴석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

 

자하성

주왕이 패전한지 이미 천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당시 주왕이 쌓았다는 30여리의 자하성(紫霞城) 일부가 그 때를 입증하듯 이끼낀 돌더미로 남아 칡 넝쿨 등이 얼크러진 덤불속에 묻혀있다.
자하성은 대전사에서 동편으로 약1km지점에 있으며 주왕암 입구에 나한봉(羅漢峰)을 거쳐 가로막은 돌담이다. 이 성은 주왕이 신라군사를 막기 위해 쌓은 30여리의 성이다.

 

 

조카가 첨으로 등산을 해 보겠다는데..

 

 

 

무기를 은닉했다고 하는 무장굴

 

 

 

 

 

 

 

주왕굴 앞에서...

 

급수대(급수대는 망월대에서 50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급수대앞 오솔길을 지나노라면 계곡쪽으로 기울어진 깍아지른 절벽이 금새 무너질듯하여 식은 땀조차 흐르게 된다.)

 

병풍바위

 

 

 

연화봉과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의 모습을 한 학소대(鶴巢臺)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다.
해방전 이 정상지점에 청학 백학 한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일인(日人)포수가 백합을 쏘아 잡아 버린후,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옛보금자리만 남아있다.
또한 학소대 중간쯤에 수백년 묵은 풍채가 좋은 회양목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이 탐이나서 톱을 허리에 차고 암벽을 기르다가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처럼 학소대는 애닯은 사연이 얽혀 있으며 주왕산의 경관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기암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운듯하여 병풍바위라 부른다.                

 

제1폭포

 

 

 

 

 

 

 

 

 

 

 

제2폭포

 

제3폭포

 

 

 

가메봉은 멀다..주왕산으로 바로..

 

정상 가기전 힘든 계단 고비를 무사히 오르고 정상에서 마주한 조카와 함께.....

 

 

 

 

주왕산의 기암괴석은 기가 막히네요.

 

 

장군봉을 마주하면서

 

 

 

무사히 귀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