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 2026/06/16일
☞. 어디를?(주봉/높이/목적지) : ♨.성주군=세종대왕자 태실_2026.0.16
☞. 들머리는? :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 (태실문화관 주차장)
☞. 특징,볼거리는? : “태실문화관, 생명문화공원, 선석사, 세종대왕자 태실, 서진암”
세종대왕자 태실(世宗大王子 胎室)은(는)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안평대군, 금성대군, 한남군, 영풍군, 화의군)의 태실은 방형의 연엽대석(蓮葉臺石)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 태실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형식 · 구조는 연엽형의 개첨석(蓋簷石, 밑지름 102㎝, 높이 42㎝), 구형의 중동석(中童石, 높이 60㎝), 석함(石函)으로 이루어져 있다.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 胎室)은 조선초기 태실형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왕자 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 된다.
☞. 누구하고? : 와이퍼하고 둘이 서~
☞. 난이도는? : 태실문화관-생명문화공원-선석사-세종대왕자 태실-서진암-원점회귀 (이동거리 왕복 약 km)
☞. 자체평점은 : ●●●●◐

선석산 자락 태봉 정상부에 위치한 사적 제444호 세종대왕자 태실의 역사와 조선 왕실의 생명 존중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교육 전시 공간입니다.







♨.조선 왕실의 태실
§.태조 태실(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 - 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산1-132
1393년(태조 2년)에 전라도 완산부(完山府) 진동현(珍同縣)에 태실을 만들었다.
§.정종 태실 - 현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산84-2(직지사)
1399년(정종 1년)에 경상도 경산부(京山府) 김산현(金山縣) 황악산(黃岳山)에 태실을 만들었다. §.태종 태실 - 현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산65
1401년(태종 1년)에 경상도 경산부(京山府) 조곡산(祖谷山)에 태실을 만들었다.
§.세종 태실(경상남도 기념물 제30호) - 현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산27
1418년(세종 즉위년)에 경상도 진주(晉州) 곤명현(昆明縣) 소곡산(所谷山)에 태실을 만들었다.
§.소헌왕후 태실 - 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산22-2
1438년(세종 20년)의 실록에 따르면 소헌왕후의 태를 처음에는 양주(楊州) 동면(東面) 여염(閭閻)[4] 사이에 묻었다고 나오는데 곧 길한 곳을 찾아 경상도 순흥부(順興府) 중륜사(中輪寺) 골짜기에 왕비의 태실을 만든 것으로 나온다.
§.문종 태실 - 현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산2(명봉사)
세종은 왕자 18명과 원손(단종)까지 19명의 집단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을 조성했지만 세자인 문종만은 예외였다.
§.단종 태실(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 -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438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산4, 1442년(세종 24년)에 경상도 성주(星州) 선석산(禪石山,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에 아기태실을 조성했다.
§.세조 태실(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사적 제444호) - 현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
1438년(세종 20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462년(세조 8년)에 가봉했다.
§.정희왕후 태실 - 현 강원도 홍천군 영귀미면 덕치리(수타사)
1483년(성종 14년) 실록에 따르면 정희왕후는 홍천의 공아(公衙)에서 태어났다고 돼 있다.
§.예종 태실(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6호) - 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경기전)
1462년(세조 8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578년(선조 11년)에 가봉했다.
§.성종 태실 -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창경궁) / 경기도 광주시 태전동 265-1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
1458년(세조 4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471년(성종 1년)에 가봉했다.
§.폐비 윤씨 태실(경상북도 기념물 제174호) - 현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산83(용문사)
소헌왕후와 정희왕후의 태실은 현재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태실은 현존하는 유일한 왕비의 태실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왕비의 가봉태실이다.
§.연산군 태실
연산군 태실은 현재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통해 위치를 추정해 볼 수 있는데 이 책의 광주목(廣州牧)에는 가마령(佳亇嶺)에 성종의 어태를 봉안했고 이령(梨嶺, 현재의 이배재(광주 목현동))에는 지금 임금(今上)의 어태를 봉안했다고 돼 있다.
§.중종 태실(가평군 향토유적 제6호) - 현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상색리 산112
1492년(성종 23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507년(중종 2년)에 가봉했다.
§.인종 태실(보물[6]) - 현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24(은해사)
1521년(중종 16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546년(명종 1년)에 가봉했다.
§.명종 태실(보물 제1976호[7]) - 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태봉리 산6-2
1538년(중종 33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546년(명종 1년)에 가봉했다.
§.선조 태실 - 현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오덕리 산1-17
1570년(선조 3년)에 가봉태실을 조성했다.
§.광해군 태실(대구광역시 기념물) - 현 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 산135
1581년(선조 14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609년(광해군 1년)에 가봉했다.
§.인조 태실
인조 태실은 현재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1626년(인조 4년)의 실록에 따르면 인조와 왕세자(소현세자)의 태가 정토사(淨土寺) 전봉(前峯)에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효종 태실
효종 태실은 현재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현종 태실 - 현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산78
1647년(인조 25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681년(숙종 7년)에 가봉했다.
§.숙종 태실 - 현 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산64-1
1661년(현종 2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683년(숙종 9년)에 가봉했다.
§.경종 태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 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산34-1
1688년(숙종 14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726년(영조 2년)에 가봉했다.
§.영조 태실(충청북도 기념물 제69호) - 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산6-1
1695년(숙종 21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729년(영조 5년)에 가봉했다.
§.사도세자(장조) 태실 - 현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리 산2(명봉사)
1735년(영조 11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785년(정조 5년)에 가봉했다.
§.정조 태실(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 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34
1753년(영조 28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801년(순조 1년)에 가봉했다.
§.순조 태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호) - 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산1-1(법주사), 1790년(정조 14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806년(순조 6년)에 가봉했다.
§.효명세자(익종, 문조) 태실(포천시 향토유적 제30호) - 현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성동리 640-1, 1809년(순조 9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836년(헌종 1년)에 가봉했다.
§.헌종 태실 - 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산6-2
1827년(순조 27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으며 1847년(헌종 13년)에 가봉했다.
§.철종 태실
철종 태실은 현재 기록이나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종 태실
고종 태실은 현재 기록이나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순종 태실 - 현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태봉리 366-38
1874년(고종 11년)에 아기태실을 조성했다.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세종대왕자태실 인근에 조성되어 있으며, 생명 문화를 테마로 한 산책로와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선석사는 통일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가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신광사라 이름지어 세웠다. 그 뒤 고려 공민왕 10년(1361) 나옹대사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당시에 새로운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닦는 다는 뜻을 가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 했다. 영조 1년(1725) 서쪽 옛 터로 옮겼다가 순조 4년(1804) 지금 있는 자리로 다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절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칠성각, 산왕각 등이 남아있다.


선석사는 사찰 맞은편에 위치한 국가사적 제444호 세종대왕자태실 수호사찰이며, 태실법당은 대웅전 오른쪽에 1천344기의 태를 봉안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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