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이모저모/향교, 서원, 서당, 재실 탐방_

☞. 향교(鄕校), 서원(誓願), 서당(書當), 재실(齋室), 누정(樓亭) 탐방 ⑩

백고무신 부부 2026. 7. 12. 19:27

☞. 향교(鄕校), 서원(誓願), 서당(書當), 재실(齋室), 누정(樓亭) 탐방 어디까지 가 봤나요? ①~②~③~④~⑤~⑥~⑦~⑧~⑨에 이어 탐방은 계속 이어집니다.

⑨.(No 136~150) : 압로정, 칠곡 매호마을 감로당, 수덕재, 독무재/하효자정려각, 화원정, 송사정, 침산정, 

No.136. ☞. 언제? 어디를? = 2026.07.11. 대구시 북구 검단동 1325에 위치한 압로정(狎鷺亭)(는)은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으나 병조참판을 지낸 이영(李榮,1494~1563)이 건립한 후 그의 외손인 채응린이 조선 명종 16년(1561년)에 후진 양성을 위해 물려 받은 것으로 보인다.  채응린은 1570년 압로정의 인근 남쪽 산언덕의 돌 층계를 깨뜨려 소유정(小有亭)을 건립하였는데, 1597년 정유재란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복원했으나 인근 마을 불량배들의 부주의로 1673년 다시 불에 탔는데 압로정은 1796년(정조 20), 8세 손 채필훈(1759~1838)이 복원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압로정은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이 이르고 있으나 소유정은 복원하지 못하고 유허지만 남아 있다.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1529~1584)의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군서(君瑞),호는 송담(松潭)이며, 대구지역에서 최초로 성리학을 가르친 유학자라 전해진다.
압로정(狎鷺亭)은 "물새와 더불어 노닌다."는 의미로 자연을 사랑하며 강호(江湖)에 은거한 은자들이 취하여 제호(題號)로 사용하는 말이다.
왕옥산(王屋山)은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 황제(黃帝)가 찾아가서 도(道)를 물었다고 하는 신선들이 사는 산을 일컫는데, 일종의 하식애(河蝕崖)가 잘 발달한 산이다.  송담 채응린이 따왔다고 하며 소유정(小有亭)은 세상의 33개 이상향 중에서 첫번째 왕옥산에 있는 작고 청허한 마을 “소유청허지천(小有淸虛之天)”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왕옥산의 해발 고도는 83m 정도이다.  왕옥산은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 헌원제(軒轅帝)가 제사를 지낸 장소이며, 중국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배경이 된 산이다. 

☎.송담채선생유허비(松潭蔡先生遺墟碑)
이곳은 과거 서산서원이 있던 자리로 서원에 배향되었던 4선생인 다의당 채귀하,송담 채응린,달서재 채선수,양전헌 채선견의 단소(壇所)이다.

No.138. ☞. 언제? 어디를? = 2023.06.10.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3길 104-5에 위치한 칠곡 감호당 (漆谷 鑑湖當)(는)은 1623년에 석담 이윤우가 퇴계학을 계승하고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만년에 아들 이도장*에게 물려주었고, 이도장은 여기에 거처하며 후학양성을 이어갔다.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의 건물로서 좌측에는 한 칸, 우측에는 두 칸 규모의 온돌방을 두었다.  좌측방은 ‘불괴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라는 뜻으로 항상 올바른 행동으로 후학에게 모범이 되고자 했던 스승이 기거했던 방이다.  우측 방은 ‘무첨실’이라는 편액이 걸려있으며 “마음가짐을 바르게하여 학문을 공부한다”라는 의미로 유학을 배우는 학동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다.  건립연대를 17세기까지 올려 볼 수 있는 널영쌍창*과, 위상을 읽게 하는 흔치 않은 제공형 보아지*가 이색적이다.

칠곡 감호당 (漆谷 鑑湖當)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서 차지하는 석담의 사회적 위상뿐만 아니라, 매원마을의 역사문화 환경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칠곡 매원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반촌(班村)으로 전해오고 있는, 영남 지방의 대표적인 동족(同族)마을입니다.

No.139. ☞. 언제? 어디를? = 2026.07.12. 대구시 남구 봉덕동 산 148번지 (법장사 인근)에 위치한 수덕재(修德齋) :  : 시조 서진(徐晉)은 고려 때 봉익대부(奉翊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오르고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출생년도는 대략 서기 1260년에서 1280년 사이로 추정된다.  서진(徐晉)의 어머니는 고려조(高麗朝) 정순대부(正順大夫) 예의판서(禮儀判書)와 검교장군(檢校將軍)을 지낸 진위군(振威君) 진위 이씨(振威李氏) 이자영(李自英)의 딸이다.  부인은 초계 주씨이다.  유허비는 대구 달성공원(達城公園)에 있다.  

달성(達城)서씨와 대구(大丘)서씨는 족보상으로 시조가 다르다. 달성 서씨는 고려 판도판서(版圖判書) 서진(徐晋)을 시조로 하고 있고, 대구 서씨는 고려 군기소윤(軍器少尹) 서한(徐閈)을 시조로 한다. 달성 서씨와 대구 서씨는 근원이 같다고 추측되지만 분파된 시기와 계대를 확실히 고증할 수 없다라고 하나 진위 이씨(振威李氏) 대동보(大同譜)에는 달성서씨(達城徐氏) 시조 진(晉)의 부친인 서무질(徐無疾)이 고려(高麗) 고종조(高宗朝) 정순대부(正順大夫) 예의판서(禮儀判書)와 검교장군(檢校將軍)을 지낸 진위군(振威君) 진위 이씨(振威李氏) 이자영(李自英)의 사위이며, 밀직사(密直司) 종2품을 지낸 대구인(大邱人)이고 그의 부친(父)은 판군기감(判軍器監)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법장사(法藏寺)는 대덕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동화사의 말사이다. 사찰이 위치한 곳은 앞산의 심신수련 장이 있는 고산골이다. 법장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구전으로는 신라말에 창건 되었으며, 한때 고산사로 불렀다고도 한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법등을 이어 왔으나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불에 타고 최근 복원된 삼층석탑만 남았다. 그 뒤 중창하면서 지금처럼 법장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삼층석탑은 1961년경에 복원되었는데, 복원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법장사 는 지금의 자리가 아닌 고산사지에 있었으나, 1961년에 무허가 건물이라는 이유로 전각 등이 철거되면서 사찰 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오게 되었으며, 1999년 종각 앞에 있던 탑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No.140. ☞. 언제? 어디를? = 2026.07.12. 대구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만촌동)에 위치한 독무재(獨茂齋)(는)은 벼슬도 마다하고 향리(鄕里)에 은거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한 하시찬(夏時贊; 1750∼1828)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건물이다.
하시찬 선생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대구 수성구에서 태어났으며, 지금의 독무재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독무암루에서 살다가, 순조 28년(1828)에 돌아가셨다.  당대의 석학이던 이경호와 송성담 밑에서 수학하였는데, 예학에 밝아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명성을 듣고 지방 곳곳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배우기를 청해 독무재에서는 언제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독무재는 원래 동구 효목동 경북주유소 부근 경부선 철로 변에 있었으나 대구시 3차 우회도로가 개설되면서 1968년 4월에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되었다.  이건 시 독무재 서쪽에 경덕사(景德祠)와 장판각을 새로 지었다.
장판각에는 『팔례절요(八禮節要)』와 『열암문집(悅菴文集)』 판각을 보관하고 있고, 경덕사에서는 매년 3월 상정일(上丁日 : 매월 첫째 丁日)에 각지의 유림들이 모여 춘향(春享)을 지내고 있다.
독무재 경내는 사당(祠堂)인 경덕사와 강당인 독무재가 병렬로 배치된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로 되어있다.  강학(講學)기능을 가진 독무재는 정면6칸, 측면1칸 반 규모로 가운데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 · 우에 방이 있는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 언제? 어디를? = 2026.07.12. 대구시 수성구 화랑로42길 31 (만촌동)에 위치한 하효자정려각(夏孝子旌閭閣)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1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려각이다. 1989년 6월 15일 대구시의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때 이부시랑을 지낸 하광신의 지극한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세운 비(碑)와 각(閣)이다.  하광신은 원래 중국 송나라의 대도독으로서,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 살게 된 하흠의 아들 하용의 손자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하는데,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치는 겨울에 복숭아를 구해다준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한다.  하광신의 효성이 지극하다는 소식을 들은 충숙왕(1327)은 하광신이 살던 마을에 효자를 표창하기 위해 세우는 붉은문<정문(旌門)>을 세우고 그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부역을 면제하도록 하였다.

☞. 하효자정려각(夏孝子旌閭閣)(는)은 정조 5년 (1781년) 다시 지었으나, 일제시대 경부선 철도가 놓이면서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비문은 이조판서겸 홍문관 대제학이던 황경원이 지었고, 글씨는 통훈대부 사헌부지평 이약채가 썼다.
건물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며, 중앙에 정려비가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조선 후기 정려각의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다.

현재 만촌동에 살고 있는 달성 하씨들이 해마다 돌아가며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No.141. ☞. 언제? 어디를? = 2025.03.26.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로1길 40-14에 위치한 송사정(松士亭)(는)은 안동댐 건설 당시 도산서원 주변에서 화원정과 함께 옮겨온 고풍스러운 정자입니다.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며, 매년 봄마다 정자 주변으로 벚꽃과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사진 촬영과 나들이 장소로 매우 유명합니다이 만개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명소입니다.

No.142. ☞. 언제? 어디를? = 2025.03.26.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로1길 40-14에 위치한 화원정(花園亭)(는)은 낙동강 절벽을 끼고 자리 잡은 전통 정자입니다.  과거 안동댐 건설 당시 수몰 위기에 처한 정자를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주요 볼거리 : 정자 주변으로 사문진 주막촌, 달성습지, 대명유수지, 화원동산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어 자연을 감상하며 트레킹하기 좋습니다.   사문진 나루터 유람선 : 사문진 주막촌에서 출발해 강정고령보 등을 둘러보는 유람선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No.143. ☞. 언제? 어디를? = 2024.11.02. 대구시 북구 침산동 1168-3(침산공원)에 위치한 침산정(砧山亭)(는)은 침산동 오봉산(침산) 정상에 위치한 대구광역시의 공원이자 유적/문화유산이다. 2008년에 건립된 침산정은 대구광역시 북구청에서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조성되었으며, 현재 침산공원 내에 있다. 침산정은 대구광역시 북구 8경 중 하나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침산정(砧山亭)은 조선 전기의 대구 출신 문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읊은 「대구십영(大邱十詠)」의 구절 중 제10경 ‘침산만조(砧山晚照)’를 기반으로 하여 지어졌다. 「침산만조」는 침산에서 바라본 저녁 노을을 노래한 시로, 그 내용은 “물은 굽이 돌고 산은 끝났는데, 침산의 푸른 숲에 가을빛이 어리었네. 어디선가 해 질 녘 방아 소리가 들려오고, 서쪽으로 지는 햇빛이 손님의 시름을 찧는 듯하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침산정에 오르면 이 시에서 묘사된 저녁 노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정자 주변 바위에는 「침산만조」의 원문과 노산 이은상의 번역문이 새겨져 있다. 침산에는 조선시대에 여제단(厲祭壇)이 있었으며, 지금은 침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