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교(鄕校), 서원(誓願), 서당(書當), 재실(齋室), 누정(樓亭) 탐방 어디까지 가 봤나요? ①~②~③~④~⑤~⑥~⑦~⑧~⑨~⑩에 이어 탐방은 계속 이어집니다.
⑪.(No 151~165) : 정관정, 황씨동원각, 경모재, 귀후재, 매강정사, 노원재/척창문, 영모재, 이로재, 일신재, 체화당, 추모재, 관천재, 낙우재, 만산재, 영고서재/영고사,

No.151. ☞. 언제? 어디를? = 2026.07.16. 대구시 북구 서변동 951에 위치한 정관정(靜觀亭)(는)은 묵재(默齋) 이병철(李柄喆)을 추모하여 이병철이 살던 곳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병철의 자는 희언(希彦)이고 호는 묵재(默齋),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조선 후기 애국지사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과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의 문인이다.

이병철(李柄喆)은 심석재에게 『중용(中庸)』을 배우고 성리(性理)의 설을 얻어들었다. 심석재는 1912년에 「묵재기(默齋記)」를 지어 주며 면려하였다. 송병선이 1905년 을사조약을 성토하다가 구금되었는데, 이병철은 탁와(琢窩) 정기연(鄭璣淵), 택와(擇窩) 우하철(禹夏轍), 치재(癡齋) 서한기(徐翰基), 긍재(兢齋) 이병운(李柄運), 중재(重齋) 윤봉주(尹奉周) 등과 더불어 상경하여 부당성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 향리의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와 경재(景齋) 우성규(禹成圭)의 강학에 참여하여 공부하였다. 이후 이병철은 몸이 쇠약하여 41세로 일찍 타계하였다.

No.152. ☞. 언제? 어디를? = 2026.07.16. 대구시 북구 서변동 557-2에 위치한 황씨동원각 상덕사(黃氏同源閣 常德祠)(는)은 황씨 선조 15명의 위패를 모신 재실이다. 황씨 동원각은 1968년 중수하였으며, 건물은 ㄱ자 형태의 재사이다.

황씨동원각(黃氏同源閣 常德祠)의 동원(洞源)은 근원이 같다는 뜻으로, 전국의 모든 황씨가 한 뿌리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조상을 받들고 씨족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려고 건립한 공간이다. 뒤쪽에 ‘상덕사(尙德祠)’라는 사당이 있다. 상덕사(尙德祠) 안에는 황씨 도시조(都始祖) 한나라 학사 황낙(黃洛)을 포함하여 모두 15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No.153. ☞. 언제? 어디를? = 2026.07.18. 대구시 북구 금호동 231-1에 위치한 경모재(景慕齋)(는)은 선산김씨(善山金氏) 문주(文朱)[금호동] 입향조인 김자창(金自昌)을 추모하는 재실이다. 선산김씨는 고려 삼중대광문하시중(三重大匡門下侍中) 선주백(善州伯) 김선궁(金宣弓)의 후손들이 김선궁을 시조로 하고 선산(善山)을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 왔다.


선산김씨(善山金氏)가 대구에 살게 된 것은 1550년(명종 5)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역임하고 전주판관을 지낸 24세손 김안국(金安國)이 달성군 세천리(世川里)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그 후 27세손 통덕랑 김자창이 금호강을 건너 문주에 들어와 세거하게 되었다. 이후 금호동 지역에 거주하는 선산김씨가 많이 늘어나 1993년 3월에 경모재[금호동]를 건립하였다. 경모재[景慕齋]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가운데 두 칸의 대청이 있고 좌우에 방이 한 칸씩 있으며, 전면에 유리로 만든 창호를 설치하였다.

No.154. ☞. 언제? 어디를? = 2026.07.18. 대구시 북구 팔달동 281-2에 위치한 귀후재(歸厚齋)(는)은 성산배씨(星山裵氏) 매곡공파(梅谷公派) 장태실[팔달동] 문중의 재실이다. 조선 초엽 성산배씨로서 장태실에 처음 정착한 사람은 배정의(裵貞義)이다. 배정의는 성산배씨 매곡공파 파조인 배숙(裵璹)의 증손자이다. 배숙은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1564년(명종 19)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추천으로 승평교수(昇平敎授)가 되어 후학 양성에 힘썼다. 고향인 성주로 물러난 뒤에는 정사를 지어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중심으로 강론하였으며, 저서로 『매곡집(梅谷集)』을 남겼다. 현존하는 귀후재(歸厚齋)는 1975년에 창건되었다. 귀후재의 ‘귀후(歸厚)’라는 명칭은 『논어(論語)』의 “부모상을 당하였을 때 신중히 행하고 죽은 조상들을 정성껏 제사 지내면 백성은 덕성이 한결 돈후하여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귀후재(歸厚齋)는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건물 가운데 대청 2칸이 있고, 좌우에 각각 1칸의 방이 있다.

No.155. ☞. 언제? 어디를? = 2026.07.18. 대구시 북구 태전동 566에 위치한 매강정사(梅岡精舍)(는)은 직장공(直長公) 서진손(徐震孫)과 서진손의 아들인 성균 생원 서미수(徐眉壽)의 추모 재사이다. 달성서씨 감찰공파는 구계 서침의 둘째 아들 서문간의 아들인 서근중(徐近中)을 파조로 하는 문중이다.

직장공(直長公) 서진손은 서근중의 아들이며 관직이 직장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조에 의하여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는 화변이 있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대구로 낙향하여 두문불출하였다. 성균 생원인 아들 서미수는 관직이 한성 참군에 이르렀으나 역시 아버지를 따라 고향 대구로 낙향하여 은일지사(隱逸之士)의 삶을 살았다. 서미수의 손자 대인 ‘겸(謙)’ 자 항렬에서 임진왜란 의병 창의가 있었는데 특히 서득겸·서재겸이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다. 본래 매강정사(梅岡精舍)는 이매동(理梅洞) 뒷산 서미수의 묘 옆에 실전(失傳)된 서진손의 제단을 설치하고 제단 아래에 세운 재사였다.

No.156. ☞. 언제? 어디를? = 2026.07.19. 대구시 북구 노곡동 산78-1에 위치한 노원재(魯院齋)(는)은 만취(晩翠) 조시원(趙時瑗)을 추모하기 위하여 함안조씨(咸安趙氏) 문중에서 건립한 재실이다. 재실의 솟을 대문에는 ‘척창문(惕愴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척창’은 선조를 떠올리니 삼가고 두렵고 슬프다는 뜻이다.

노원재(魯院齋) 뒤에 조시원의 묘소가 있다. 조시원은 함안조씨 대구 원대 입향조인 연담(蓮潭) 조함장(趙咸章)의 맏아들이다. 기호 남인의 영수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3년(현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정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고성군수·정랑을 지냈으며 1676년에는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충청감영에 나아가 구휼미를 풀어 여러 고을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1681년 순천부사로 나아갔다가 당쟁이 격화되는 것을 보고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였다. 노원재(魯院齋)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형태이다. 건물 전면과 측면 일부에 계자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 각 1칸은 방인데 4칸 모두 유리 전면에 창호를 달았다.


No.157. ☞. 언제? 어디를? = 2026.07.19. 대구시 북구 노곡동 산73-2에 위치한 영모재(永慕齋)(는)은 경주이씨(慶州李氏)의 재실(齋室)이다. 고려말(高麗末) 익재(益齋)선생의 9세손(世孫)인 묵와공(默窩公) 이후남(李厚楠)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8세손인 이집길(李集吉)이 건립하였다. 뒷산에 있는 묘의 비석(碑石)은 300년 전에 세워져 근래에 보수하였으며 현존 건물은 1917년에 중건한 것임. 건물은 방 3칸, 대청 1칸, 마루는 우물마루에 팔작지붕, 홑처마이다.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아명은 지공(之公), 호는익재(益齋), 실재(實齋), 역옹(轢翁), 자는 중사(仲思)로서 고려말의 학자, 왕명으로 실록을 편찬함.
묵와공(默窩公) 이후남(李厚楠)은 경주 구강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이거하여 은거하면서 공자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입향조(入鄕祖:마을에 맨 처음 정착한 조상)로서 선비 김귀송(金貴松, 백촌 김문기선생의 7세손)과 함께 마을의 모든 일을 공자의 말씀과 같이해야 한다고 동명을 논어당(論語堂)이라 하다가 동명으로 적합치 못하다 하여 논촌(論村)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다 다시 의견을 모아 공자가 노(魯)나라 사람이니 ‘공자의 부락’이란 뜻을 좇아 노곡(魯谷)이라 하였다..

No.158. ☞. 언제? 어디를? = 2026.07.19. 대구시 북구 조야동 11 (망일봉 아래)에 위치한 이로재(履露齋)(는)은 김해김씨 삼현파 군수공 종중에서 파조인 김인복(金仁復)을 비롯한 일곱 명의 선조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실이다. 이로(履露)는 선조를 사모한다는 뜻으로 『예기(禮記)』「제의(祭義)」에 의하면 '봄에 이슬이 내리면, 군자는 성묘하고 반드시 슬픈 마음을 갖는다"는 문장에서 유래한다.

김인복(金仁復)은 세조3년 지금의 청도군에서 태어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후에 우후(虞候) 벼슬을 지냈다. 1498년(연산군 4) 김일손(金馹孫)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자 김해김씨 삼현파 후손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전국 각지로 흩어져 은거에 들어갔다. 김인복(金仁復)은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서 은거하다가 1527년 사망하였다. 당시에 세상 사람들은 김인복을 ‘인내하며 엎드려 은거하였다’는 뜻에서 ‘인복공(忍伏公)’이라 칭하였다.
김인복(金仁復)의 후손이 북구 조야동으로 입향한 것은 김인복의 8세손인 후남(後南) 김상후(金尙厚)와 아들인 좌승지 김중재(金重載) 때이다.

No.159. ☞. 언제? 어디를? = 2026.07.19. 대구시 북구 산격동 1004-1에 위치한 일신재(日新齋)(는)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이재 서사진 선생의 충절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어진 문중 재실(日新齋)입니다.

설립 배경 :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서사진 선생이 전쟁이 끝난 후 강학소를 열어 교육에 전념하던 곳 대한민국 구석구석 일신재입니다.
아랫서당 : 인근에 위치한 용담재(龍潭齋)가 '윗서당'으로 불린 반면, 일신재(日新齋)는 '아랫서당'으로 불리며 지역의 유교 문화와 야학당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이건 : 본래 경북도청 터 서편 절벽 아래에 있었으나, 1976년 청사 확장으로 인해 1km가량 떨어진 현재의 위치로 목재와 기와를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No.160. ☞. 언제? 어디를? = 2026.07.19. 대구시 북구 산격동 913에 위치한 체화당(棣華堂)(는)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義兵將)으로 전공을 세운 이재(怡齋) 서사진(徐思進)의 아들 삼 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체화’는 『시경(詩經)』「상체(常棣)」에 출전을 둔 것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의미한다.
서사진의 첫째 아들 서신(徐愼)은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증직(贈職)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軍資監正)을 받았다. 둘째 아들 서율(徐慄)은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올랐다. 셋째 아들 서업(徐)도 손처눌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대구 지역의 이름난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체화당(棣華堂)은 북구 산격동 913에 있다. 연암산 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어서 연암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달성서씨의 집성촌이다. 달성서씨 문중에서 운영하던 서당 용담재(龍潭齋)와 일신재(日新齋) 등이 있었기 때문에 서당골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체화당이 있는 곳에는 원래 300년 정도 내력이 있는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서율의 남계정사(南溪精舍) 건물이 있었다. 1959년에 달성서씨의 문중 건물과 남계정사를 통합하여 새롭게 ‘체화당’이라는 이름을 붙여 중건하였다.
체화당(棣華堂)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화악문(花萼門)’이라는 솟을대문이 있다.

No.161. ☞. 언제? 어디를? = 2026.07.19. 대구시 북구 조야동 140에 위치한 추모재(追慕齋)(는)은 함지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달성서씨 사과공(司果公) 서사도(徐思道)의 어머니인 영양최씨(永陽崔氏) 이하 4대 선조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달성서씨 현감공파 문중에서 건립한 묘소 수호 재실이다. 조야동(助也洞)은 18세기 초에 일어난 민란과 흉년을 피해 김해김씨(金海金氏) 상후공이 청도에서 이주하여 조야동에 마을을 개척하였다.
추모재(追慕齋)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형태의 목조 기와집이다. 정면에서 마주보았을 때 좌측에서부터 방 2칸, 마루 2칸, 방 1칸이며, 반 칸 규모의 툇간이 있다.
함지산(函之山)의 유래 : 함지산은 원래 함(函)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함의 산'이라는 뜻의 함지산(函之山)으로 부르는 것이 올바르다는 학술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봉우리 이름 확인 :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함지산의 두 봉우리 명칭인 남쪽의 자라봉과 북쪽의 유람봉(유량봉)에 대한 기록이 추모재 중수기에 명시되어 있어, 지역 지명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No.162. ☞. 언제? 어디를? = 2026.07.21. 대구시 북구 관음동 135에 위치한 관천재(觀川齋)(는)은 1926년 관천 배석하(裵錫夏)는 칠곡향교의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서 후생가외(後生可畏)의 강학당으로 관천재(觀川齋)를 건립했다.
관천(觀川) 배석하(裵錫夏)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 박제순(朴齊純)·이지용(李址鎔)·이근택(李根澤)·이완용(李完用)·권중현(權重顯)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1910년에 일제가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웠으며, 1919년에는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등과 함께 한국 독립을 위한 「독립청원서」를 파리에 보낸 파리장서 사건에 참여하였다. 관천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목조 기와집이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문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 폐가가 되어 방치되고 있다.

No.163.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상주시 에 위치한 낙우재(洛寓齋)(는)은 상세한 기록이 어디에도 없다.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상주시 에 위치한 낙우재(洛寓齋)(는)은 정확한 기록을 찾기 어렵다.

No.164.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문경시 흥덕동 98-1에 위치한 만산재(晩山齋)/소산당(素山堂)(는)은 개성고씨 예동파가 17세기 초에 흥덕동에 정착하여 벌족하고 번성하였으며 입향조 고상안의 손자 세염의 증손 일취가 세거하던 사족의 전통 주택이다. 1824년(순조 24)에 태촌 고상안(高尙顔) 선생의 9세손인 고대영(高大榮)이 21세 때 건립한 건물이다.

현재 점촌 지역에 남은 조선후기 건물 중 반가의 품위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의 민도리 형식으로 누마루에서 보는 풍광이 시원하다. 오랜 기간 퇴락되어 2020년 2월에 보수정비를 시작하여 8월에 준공하였다.
만산재(晩山齋) 내에 보관되어 온 『문경 개성고씨 양경공파 문중 소장 전적 및 고문서』는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No.165.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문경시 흥덕동 98-1에 위치한 영고서재(潁皐書齋)/영고사(潁皐祠)(는)은 600여 년을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는 개성고씨(開城高氏)는 총 900여 가구 3천여 명에 달한다. 지금은 옛 세거 형태가 많이 지워졌으나, 아직도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고택(古宅)에 묻어 있다.

영고서재(潁皐書齋)/영고사(潁皐祠)(는)은 문경지역에서 '왕태 고씨'로 통하는 이들은 문경 동로면 황장산에서 발원해 영순면에서 받아들인 뒤 예천 용궁면 남쪽, 풍양면 삼강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금천(錦川)을 따라 산양면, 영순면 열두 골에 터를 잡고, 4개 파의 집성촌을 이루었다.

영고서재(潁皐書齋)/영고사(潁皐祠) 존양문(存養門)이라 편액한 대문을 들어서면 좁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영고사(潁皐祠)와 영고서재(潁皐書齋)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이 문과에 급제하여 예천(醴泉)·풍기(豊基) 군수를 역임하고, 광해(光海)의 정란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며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영고서재(潁皐書齋)는 태촌 고상안 (高尙顔) 이 만년에 은거하던 곳에 건립한 서재로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1845년에 중건되었다. 영고사 (潁皐祠) 는 고상안(高尙顔)과 그의 손자인 낭옹(浪翁) 고세장(高世章)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한 묘실로 1868년에 훼철된 것을 1992년에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중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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