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향교(鄕校), 서원(誓願), 서당(書當), 재실(齋室), 누정(樓亭) 탐방 어디까지 가 봤나요? ①~②~③~④~⑤~⑥~⑦~⑧~⑨~⑩~⑪에 이어 탐방은 계속 이어집니다.
⑫.(No 166~180) : 봉서재, 수선서당, 유 유발 효자각, 침석정,

No.166. ☞. 언제? 어디를? = 2026.07.21. 대구시 북구 관음동 135에 위치한 봉서재(鳳棲齋)(는)은 조선 후기의 학자 배경국(裴經國)을 기리기 위하여 지역 유림이 건립한 추모 재실이다. 배경국(裴經國)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사강(士綱), 호는 죽와(竹窩)이다. 1746년(영조 22) 지금의 관음동에서 배처관(裵處寬)의 아들로 태어났다. 강와(剛窩) 임필대(任必大)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77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시문을 모아 엮은 문집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봉서재(鳳棲齋)는 1830년(순조 30)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화재로 전소되었고, 1970년에 중창하였다.

봉서재(鳳棲齋)는 1970년에 중창하였으나, 현재 관리가 되지 않아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어 있고, 정문인 조양문은 지붕 일부가 훼손된 상태다.

No.167.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상주시 청리면 청하리 (청상저수지 앞)에 위치한 수선서당(修善書堂)(는)은 신잠이 세운 18개 서당 중 하나로, 당시 상주의 속현인 청리현(靑理縣)에 건립하였다. 신잠은 1552년(명종 7) 상주목사로 부임한 이후 상주 선비들이 학문을 할 곳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부임 기간 동안 상주 지역에 서당 18개를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수선산 아래에 서당을 세웠지만, 터가 좁아 서쪽 개울가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1603년(선조 36) 철암(鐵岩) 아래로 옮겨 세웠다. 이전(李㙉)·이준(李埈) 등이 수선서당에서 강회를 열었고, 옥성서원(玉城書院)이 산사태로 매몰되었을 때 수선서당에 신주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또한 류성룡(柳成龍)의 문집을 수선서당에서 교정하였다. 1987년 철암산 아래 저수지가 축조되면서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수선서당(修善書堂)은 『서당록(書堂錄)』이 보존되어 있는데, 여러 기문(記文)을 비롯하여 「심원록」·「임원록」 등이 수록되어 있어, 수선서당의 연혁과 인적 구성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현재 관련 자료는 상주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No.168.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상주시 청리면 청상리에 위치한 유유발효자각(劉有發孝子閣)(는)은 유 발의 뛰어난 효도를 기리는 효자각이 있다. 효자 유 발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계모의 학대에도 효도로써 감동 시켰으며 아버지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였다. 시묘 살이를 하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죽어 가는 것에 깜짝 놀라 깨었다. 그 곳을 가보니 정말 호랑이가 함정에 빠져 있었다는데, 동네 사람을 데려와 그 호랑이를 구해 살려 주었다. 이 호랑이는 밤마다 아버지의 묘 옆 시묘살이 하는데 찾아와 유발을 지켜주었었다. 고 한다.

이러한 출천지효심(出天之孝心)은 겨울에도 산에서 딸기를 구하여 계모를 기쁘게 해드렸고, 장마철에도 公의 여막 주위에는 햇빛을 볼 수 있었다 하여 그 지역을 지금도 빛보기들(景見野)이라 불리운다.
영남의 효자로 조선왕조실록(정조편) 1779년(정조3년) 6월14일에 「人才, 尙州故良人劉有發, 事親有至行. 인재, 상주고량인유유발, 사친유지행」 “인재(人才)로 상주(尙州)의 고(故) 양인(良人) 유유발(劉有發)은 부모를 섬김에 있어 지극한 효행(孝行)이 있었습니다”라 적고 있으며 복호(復戶)를 받기도 하였다.
상주 상산지에는 「劉有發孝誠出天事聞 復戶. 유유발효성출천사문 복호」 “효성이 출천하여 복호를 명하였다” 라 기록은 전 한다.
이 각은 1760년에 세웠다고 하나 안내판에는 1823년에 지어졌으며, 1900년에 중수하고, 2013년에 복원, 개축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비명은 "劉孝子碑"로 수계거사 이승배가 짓고, 글씨는 이몽표가 썼다라고 알리고 있습니다. (참고 : 상주시사, 상주의 문화재 일부)

No.169. ☞. 언제? 어디를? = 2026.07.21. 경북 문경시 흥덕동 에 위치한 침석정(枕石亭)(는)은 문경시 흥덕동 예동(禮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남석(南石)과 침석(枕石)이라는 너른 바위가 있는데, 남석(南石)에는 남석정(南石亭)이, 침석(枕石)에는 침석정(枕石亭) 정자가 건립되었다. 지금은 남석정(南石亭)은 없어지고 침석정(枕石亭)만이 남아 있다.

흥덕동 예동(禮洞) 마을은 개성고씨(開城高氏)들이 17세기 초반에 입향하여, 지금까지 400년간 터를 누리며 살고 있다.

침석정(枕石亭)은 예동(禮洞) 저수지 북쪽에 위지하는데, 이 지역에 살던 창애 고윤상(蒼崖 高允相:1832~1884)과 아들 한서 고식(寒棲 高式:1850~1915)을 기리기 위해, 1975년경 후손들이 건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침석정(枕石亭) 아래 바위에는 태촌 선생 별장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 농가월령가와 관련된 학자 태촌 고상안 선생과 관련된 곳으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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